클럽하우스 현상을 보며 느낀 열가지

전화로 ‘치킨 한마리만 배달해주세요’ 라는 말하기가 두려워 배달앱을 사용하고, 바로 앞에 있는 친구에게도 말이 아닌 메시지로 소통한다는 요즘. 음성으로 하는 SNS인 ‘클럽하우스’의 인기는 참 이례적이다.

며칠 해보니 카톡 단체 채팅방에서 문자를 통해 소통하던 걸 파티룸을 만들어 음성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느낌도 들고, 줌에서 영상만 빼 놓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점은 많아야 수십개인 단체 카톡방에 비해 클럽하우스의 파티룸은 전세계에서 만들어진 수천개의 방이 존재한다. 또한 줌은 초대 링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게 보통인데, 클럽하우스는 리스너의 자격으로는 어느 곳이든 언제라도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몇년 사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런 파급력과 이슈를 점령한 앱이 있었을까? 아마도 트위터 신드룸 이후로 처음 보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의 CEO인 엘론머스크, 페이스북의 주크버그 등의 유명 인사들의 참여했다는 소식도 있고, 국내에서는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나 토스의 이승건 대표의 토론도 있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어떤 참가자 분의 SNS를 보니 연애상담룸에서 밤 12부터 해뜰때까지 있었나고도 하고, 5일 내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여기에서 보냈다는 증언들도 심심치 않게 들여온다.

그렇다면 이런 열풍의 원인은 뭘까?
비록 이틀동안 서너사간 정도 밖에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의미있는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들어 빠르게 정리하고
그 내용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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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예전 유희열님의 새벽 라디오 방송을 듣는 기분이었다. 고정 게스트로 10센티와 옥상달빛 멤버들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새벽의 수다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역시 클럽은 아무래도 해떠있는 일과 시간보다는 해진 늦은 밤이나 새벽에 어울리는 감성 어플로 보인다. 나 또한 그 시간에 참여했고 실제로 굉장히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유희열 디제이가 진행하는 새벽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게스트 멤버들은 눈이 맞아 결혼까지 골인했다. 클럽하우스에서 대놓고 소개팅 방들이 있는 걸보니, 라디오 게스트들 사이의 연분이 클럽하우스에서도 꽤나 흘러 넘칠거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이제는 넷플릭스때문에 날새는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에서 밤새 놀다가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질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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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스마트폰 화면에 음성이 들어가니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더 친밀한 기분이다. 평소 글로만 읽었던 분의 콘텐츠를 음성으로 들으니, 감정선까지 녹아들어 마음에 와닿는다. 콘텐츠의 확장이라고 해야할까. 더 풍부하고 생생한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 왔다. 시각적 자료가 필요없는 강연이나 수업에 쓰인다면 이보다 편리할 수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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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들이 한두개가 아니라 수천 수만개가 생성된다고 생각하면, 전세계의 음성 콘텐츠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거대 플랫폼이 되겠다. 생각보다 파급력이 엄청날듯하다. 전세계에 라디오 채널이 수천개가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라디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거다. 유튜브의 영상 콘텐츠와는 다르게 방을 만들고 방송하기가 너무나 쉬워서 이 채널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음악앱이나 팝케스트, 라디오 어플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많이 옮겨가지 않을까 싶다. 티비는 하루 종일 보기 어려워도 라디오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하면 체류시간 최강자 sns가 될듯하다. 라디오는 종일 틀어 넣는 사람도 많으니까. 중간에 잠깐 음성광고만 넣거나, 아프리카 채널의 별풍선 같은 기능만 넣어도 굉장한 수익성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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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라디오 틀어 넣고 작업도하고 sns도 할 수 있다. 참여자들의 프로필을 보고 인스타계정으로 들어가 살피면서 관계를 연결할 수 있다. 스피커들의 말을 들으면서 메모나 검색도 할 수 있다. 앱을 벗어나면 끊기는 유투브와는 다른 환경이다.
음성을 통해 나와 합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더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분위기뿐 아니라 성향이나 정서까지 어느 정도 반영되기 마련이니까.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해도 목소리를 변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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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힙한 분들, 크리에이티브 업종에 종사자들은 다 모인 것 같다. 확실히 이 쪽 사람들이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테니. 같은 분야의 얘기를 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는 건 좋은 일인데, 그냥 거기서 끝나는 거면 시간이 아까울 것 같기도 하다. 생산성없는 대화들로 끝나 버리는 룸들은 금방 사라질 것이다.

각각의 토크 방이 생겨 대화를 하는 형식은 카카오톡 단체방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이 대화는 채팅이 아니라 음성으로 이뤄진다. 채팅에선 문장력이 중요하지만, 여기선 보이스가 더 중요할 것 같다. 목소리 미남, 목소리 미녀들이 환영받을 듯하다. 그 목소리의 힘만으로도 팬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매력적인 목소리 하나로 수많은 팬을 이끄는 라디오 디제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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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 다자간의 대화는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에너지와 집중도가 필요한 굉장히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스피커로 참여해 보진 않았으나, 듣는 걸 좋아하고 편한 나같은 사용자나 말주변이 없고 스스로 사투리를 쓰는 것에 민감한 사용자들은 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한글로된 대부분의 방에 있는 분들이 서울이나 판교 경기권 분들로 보인다. 스타트업, VC, 디자인, 마케팅, 기획 등의 종사자가 대부분이기 때문 아닐까라는 가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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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도와 인지도가 있는 사람의 등장에 따라 방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질것 같다. 할 수 없이 유명인이 환영과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소 박탈감과 소외감이 생겨날 수도 있겠다. 이름있는 사람들은 대게 그들만의 연대가 이미 생성돼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많은 방들 사이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들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 같다. 그런면에서는 의도치 않게 굉장히 배타적인 플랫폼이 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사실 처음부터 안드로이드계열 앱을 만들지 않은 건 어쩌면 전력적인 측면에서 일부로 그랬다는 의구심도 드는 게 사실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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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강연의 성격이 아니라, 토론이 된다면 감정 상할 일도 많이 생길 것 같다. 말이라는 특성상 목소리에는 흥분되는 감정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긴 하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기 힘들고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올 수 있다. 녹음이 안되고 휘발되는 기능을 가지고는 있지만, 주의해야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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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서 조용하던 대리님 과장님들의 실무진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의 발언권도 세고 적극적이다. 그들이 대화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이 되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보인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 활발하게 공개적으로 활동할만한 인터넷 공간은 거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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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과 시각적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글로 만나는 사람과 말로 만난 사람 얼굴만 아는 사람에 대해, 그 만남들의 장단점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장 원초적인 대화방식인 ‘음성’, ‘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감각의 10프로 밖에 안되는 감각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이런 물음표가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에 시간을 쓸까? 왜 그토록 거기에 목을 메고, 목 말라하는 걸까?

자기 생활 패턴도 버린 채, 클럽하우스에서 5일 밤 낮을 지새우면서 이렇게 교류하고 소통하려고 하려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계속 그런 의문이 밀려들었고,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탐구해 볼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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