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심오하나 실행은 단순하게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몇 분 거리도 안되는 곳인데 5년 동안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큰맘 먹고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옆에서 볼 때는 참 쉬웠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 따로 몸 따로 놀더군요. 분명 볼 때는 한 동작이었는데 코치님은 구분 동작을 요구하십니다. 구분해서 하나하나를 생각하다 보니 몸은 뻣뻣하게 굳고 머리는 복잡하고 폼은 엉망이 되더군요. 머리, 팔, 몸통, 다리에 각각 따로따로 머리가 들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예쁜 폼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 하나하나 철저하게 연습해야 한다는 코치님을 믿을 수밖에요. 이렇게 따로 노는 생각과 몸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게 연습이고 훈련이 아닌가 합니다. 따로따로지만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전거거나 운전을 배울 때도 그랬었죠. 처음에는 각각의 동작을 신경 쓰다가 진도가 안 나가지만 계속 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타고 있는 것도 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지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것입니다. 재밌게 운동하고 재밌게 타려면 훈련의 과정을 필수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브랜드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클라이언트와 킥오프를 하고 오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때가 많습니다. 팀원들이 생각하는 각자의 생각까지 보태지면 생각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죠. 이럴 땐 그동안 모았던 생각을 다 한번 싹 한번 비우고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 생각과 생각을 연결해 주는 흐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의 줄기가 단순해지는 거죠.

최근에는 이전에 근무했던 브랜딩 회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코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팀장급이 없는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기획단의 이해도를 높이고 좀 더 다양한 관점을 이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디자인 방향성을 잡아갈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주니어 디자이너 시절을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를 출발할 때 시점이 가장 막막했습니다. 기획팀에서 넘어온 기획서는 있는데, 도대체 이걸 디자인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가 감이 잘 오지 않았죠. 사수가 있어도 경험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큰 도움을 받기 어려웠고 같이 헤매기 일쑤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브랜드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클라이언트의 관여도가 상당합니다. 브랜드의 성공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니까요. 회사 대표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관심과 적극적인 관여만큼 다양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정보의 양도 상당합니다. 기획팀에서 넘어오는 정보, 기술팀에서 넘어오는 정보, 인사팀에서 넘어오는 정보의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 쉽지 않습니다. 디자인이 단순히 예쁘게 잘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사업의 방향성과도 맞아야 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는 감각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이해 사업 전략의 이해까지도 해야 합니다. 잘 표현만 하는데도 벅찬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이런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요약해 주고 핵심을 집어 주는 게 전부입니다.

코칭을 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많은 정보를 모으고 그걸 분석해 수시간 회의를 하고 의견을 나누더라도 결국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해야 합니다. 한두 문장으로 정리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말만 길어진다면 그 프로젝트는 산으로 갈 확률이 올라갈 것입니다. 결국 이 한두 문장을 뽑아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고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순화의 과정도 앞서 말씀드린 운동이나 운전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분절된 정보들과 복잡한 의사결정 관계들 때문에 머릿속에 꼬이고 헝클어져 풀릴 생각을 하지 않지만요. 이런 과정을 반복해 훈련하다 보면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몸에 흡수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단순한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이 툭하고 튀어나옵니다. 결국 지루함을 견뎌낸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일 때문에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해진다면 머리가 터질 때까지 끝까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한계가 다가왔을 때 머릿속을 싹 비워서 제로 상태로 만들어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쭉정이들은 날아가고 핵심만 남습니다. 그렇게 핵심, 단순함의 힘으로 실행으로 이어가야 좋은 결과를 빠른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