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온 물보다 내 우물이 중요한 이유

어디선가 퍼 온 물은 금방 사라집니다. 하지만 내 안의 우물을 파면 마를 새가 없이 솟아납니다. 어디선가 읽은 말들과 들은 정보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남의 우물에 저장돼 있던 퍼 온 물이죠. 그렇게 퍼 온 물은 그 물 맛도 잘 모르겠고 소중함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설명할 정도로 이해를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금방 까먹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찾아보기로 파보기로 마음먹고 읽고 찾은 정보들과 공부한 내용들은 머릿속에 오래 남습니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저의 20대 시절 한참 록 음악에 빠져 있던 그 시절 락스타들 전 세계 음악씬을 점령하던 시절에는 핫뮤직이라는 록 음악 잡지를 교과서처럼 공부하고 외우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록 밴드의 역사를 역사책 공부하듯이 연표와 도료로 노트에 그려가며 익혔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보면서 그 분야의 정보들 배우고 분석을 하니 공부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퍼 온 물로 시작했지만 공부를 해가면서 파고 들어가 보니 나만의 시각으로 그 씬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 음악과 록 음악에 대한 나만의 우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 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브랜드 디자인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브랜드 경영이나 마케팅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습니다. 디자인을 잘 하고 싶은데 더 잘하려면 브랜딩을 몰라서는 어렵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브랜딩 쪽의 교과서라고 하는 벽돌처럼 두꺼운 책들을 읽어가면서 (아니 일단 사서 가까이 두는 정도라 해야 맞겠네요.) 그렇게 퍼 온 물들에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수십 권의 책, 수년의 시간이 쌓이자 그때부터는 내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나만의 관점이 담긴 정보들을 더 모으고 분석하고 내게 맞는 방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판다고 정말 내가 원하는 물(성과)이 나올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어렵고 막히더라도 끈질기게 파보고 파보는 가운데 발견한 이론이나 괜찮은 방식들을 내가 그 때 진행하던 브랜드 기획과 디자인에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러번 적용해보고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우물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다른 곳에서 멀리에서 퍼 온 물이 별로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풀어 놓은 문제 풀이 방식(퍼 온 물)을 보면 금방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척이나 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풀어보면 쉽지 않죠. 결과만 놓고 봐서 그렇게 그 문제를 풀어 낸 과정에서의 방식을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직접 파보고 경험해 보지 못한 이유입니다. 나만의 우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집요함,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는 시도, 우물의 끝까지 파내려 가보려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만의 풀이 방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렵더라도 파다 보면 저 깊은 곳에서 물줄기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만난 그 물은 이 전에 다른 곳에서 퍼 왔던 물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넘칠 것입니다.

물이 솟아오르기까지 파보는 집요함이 나만의 방식을 만듭니다. 그렇게 완성된 마르지 않는 나만의 우물은 다른 이들과의 차별성을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