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급에 맞는 꿈꾸기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왜소했지만 초등학교 때 덩치 큰 형들을 씨름으로 이길 정도로 근력과 깡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체급은 낮아도 순발력으로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완전히 무너진 게 중학교 3학년 때입니다.

전교 체육대회 씨름 종목에 당당히 선발 출전을 했을 때입니다. 내 눈 눈앞에 바로 어깨가 보이고 얼굴을 보려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친구와 맞붙게 됐습니다. 별로 겁내지 않았습니다. 기술과 균형감으로 체급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시작하자마자 내 두 다리는 하늘에 붕 떴습니다. 거구의 친구는 그 상태로 백사장 한 바퀴를 도는 퍼포먼스까지 펼치더군요. 끝내 저는 짐짝처럼 바닥에 내팽겨 쳐졌고 입안으로 모래가 한가득 들어왔습니다.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퍼졌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굴욕이었습니다.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 체급이 있는 이유가 다 있다고요. 체급에 맞는 사람과 경쟁해야지 기술과 요령만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어떤 선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절대 체급이 맞지 않는 씨름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기 중량에서는 더 이상 상대가 없을 때는 윗 체급의 챔피언과 맞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자기 체급에 맞는 상대와 맞붙어야 합니다.

이건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동네 조그마한 카페가 스터벅스 같은 프랜차이즈와 상대해서는 백 퍼센트 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인테리어 비슷한 서비스과 제품, 가격으로는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체급에 다르다면 다르게 해야죠. 스타벅스라는 공룡이 제공하지 못하는 걸 찾아 제공해야겠죠. 우리 가게에만 있는 특별하게 브렌딩 된 원두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직접 구운 쿠키가 경쟁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별 취향까지 아는 세심한 서비스도 단골 고객을 만드는데 좋은 방법일 겁니다. 스타벅스가 따라 하지 못하는, 바로 옆 경쟁 카페엔 없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가끔은 그런 무모한 도전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러려면 자기 구역의 완벽한 일등이 됐을 때 해야 합니다. 운이 좋아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 게 오래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1인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이런 점들이 중요하더군요. 자기의 체급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내 체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객관적인 저울로 재본적이 없는 상황에서 짐작만으로 내 체급을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걸친 옷을 다 벗고 정직하게 저울 위로 올라가 체급을 재봐야 합니다. 일을 몇 번 해보면서 그걸 파악해 보면 좋습니다. 과도한 욕심을 냈다가 백사장에 처박혔던 기억이 되살아날지 모르니까요.

물론 체급이 높다고 반드시 실력이 높은 건 아닙니다. 체급이란 그저 내가 경쟁하고 활동할 수 있는 무대 같은 거죠. 무대를 정해 놓고 해야 일단 일하기 편합니다. 동선 파악도 미리 할 수 있고 일의 분량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작은 기업이 선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프리랜서 그룹들이 가득한 곳에서 규모 있는 회사가 불쑥 들어오는 것도 경쟁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체급이 낮은 회사의 경쟁력은 단연 민첩성입니다.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빠르고 신속하고 기민하게 계획한 일들을 먼저 해볼 수 있습니다. 체급이 높은 덩치가 크고 느린 조직이 이렇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 일찍 해보고 실패해 보는 가운데 경험치는 점점 더 쌓여갑니다. 저 또한 지난 5년간 1인회사를 운영하면서 이 점이 좋았습니다. 빨리 해보고 안되면 방향을 수정하고 그 경험을 다시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조직의 구성원 많은 회사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죠. 한 사람의 희생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브랜드와 회사들은 작은 체급에 맞는 무대에 있어야 합니다. 대신 자신들의 장점인 빠르고 당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동차로 치면 마치 미니 쿠페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체급은 소형이라도 심장은 중형을 넘어 스포츠카 같은 에너지를 가져야합니다. 작지만 독특한 스타일로 도로 위 그 어떤 차보다도 눈에 띄어야하겠습니다.